무잔향 Mujanhyang(anechoic) @ MMCA Seoul

2014. 5. 23 - 2014. 5. 2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다원예술 프로젝트 첫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 ‘무잔향’이라는 이름은 작곡가 존 케이지가 1957년 전미음악교사협회에서 발표한 '실험음악'이라는 제목의 글의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다. 7개국 24명의 작가의 실험영상 및 실험음악 공연이 3일간 진행되었다.

"텅 빈 공간이나 텅 빈 시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무언가를 보게 되고 무언가를 듣게 된다. 원하다면 침묵 상태를 만들어 보라.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공학적으로는 가능한 한 최대한 조용한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방을 무잔향실[혹은 무향실](anechoic room)이라고 부르며 그 방의 여섯 면의 벽은 특수한 물질로 만들어서 이 방에서는 잔향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몇 년전[1951년]에 하버드 대학에 있는 그런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나는 거기서 높은 소리 하나와 낮은 소리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곳의 연구원에게 물어보니 그는 높은 소리가 나 자신의 신경체계에서 나는 것이고 낮은 소리가 혈관에서 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소리가 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죽더라도 소리는 계속 날 것이다. 음악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기 획 : 류한길, 이행준  

참여작가 : 가이 셔윈, 린 루, 그렉 폽, 타쿠 스기모토, 다케시 이케다, 모에 카무라, 라이오넬 파룬, 에티엔 카이에,
사리토테(다케시 이케다 모에 카무라 타쿠 스기모토), 마티야 슐렌더, 최준용, 스클라벤탄츠(최정훈&조용훈),
사비에 퀘렐, 제롬 노팅거, 그리스토프 어거, 앤소니 맥콜, 케빈 드럼, 위르겐 레블, 토마스 코너,
A Typist(류한길, 김태용, 로위에), 타쿠 우나미, 홍철기


기획 배경 및 후기

애초에 전체 행사의 현실적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조건은 류한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후 즉흥음악/실험영화/텍스트/출판/퍼포먼스 등에 관심을 갖고 이미 활동을 하고 있던 여러 사람들과 단체가 함께 여러 차례 회의가 진행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무잔향'이라는 이름은 홍대 근처의 술집에서 소설가 김태용의 아이디어로 홍철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제목에 의미를 만들어 나갔던 것 같다. 잠정적으로 물리적 공간의 필요성과 정기적 페스티벌 형태가 필요하다는 동의가 있었지만, 관련 문제에 대한 공동의 의지와 의견을 나누고 확인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었다. 하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국립현대미술관과 조건협의와 일정 등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지연되고 취소를 거듭하는 사이에 배경과 맥락을 재정립하려는 의지보다는 행사의 개최 자체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 시간 사이에 애초의 프로그램도 많이 변할 수 밖에 없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는 행사를 기획해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다원예술이라는 것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아닌 혹은 수용되지 못할 수 밖에 없다는 부정적 의미를 전제하는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보건데 기획의 질적인 측면은 뒤로하고, 현실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결국 내부의 기획이 아닌, 외부의 행위자/중재자를 찾고 이를 위한 행정적 보완책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국엔 위탁인 셈이다. 내용을 차곡차곡 채위나가며, 제도 내부의 사람이 성장하고 그들이 외부의 중재자(독립기획자건 뭐건)와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지금 이 시대에 그 제도가 요구하는 바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결국 자기목적성을 상실하고 공공성과 무차별적 대중과 관계 맺는 것이 시대의 과제가 된 지금 ‘공모'와 ‘외주'만이 지금의 기획의 방법과 내용이 되었다. 어떤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기획의 전부는 당연히 아니니까. 결국 돌고 돌아서 이 문제와 나를 둘러싼 작은 공동체의 기획의 의지는 문래레조넌스의 중단으로 상징적으로 소멸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레조넌스 역시 류한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