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映畵의 문화적역할文化的役割_이운곡李雲谷

1937년 10월 6일 동아일보


아래의 글은 1937년 이운곡이 “영화의 문화적 역할” 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한 글로 네 번째 기고문이다. 이운곡은 30년대 활동안 문학비평가이다. 영화비평과 당대 개봉한 영화들에 대한 현장비평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풍자문학의 길>, <조선신극운동의 당연한 제문제>, <체홉흐의 문학관>, <고골리의 생애와 예술>, <문학과 영화>, <소재와 주제와 작가 정신> 등 주로 이운곡이 1930년대 후반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신문지면을 통해 발표한 글과, 1920~30년대 <<조광>>을 비롯한 잡지에서 이운곡의 글을 확인 할 수 있다. 다만, 이운곡이 어떤 배경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40년대 이후의 활동의 전개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백문임이 편집한 조선영화란 하오: 근대 영화비평의 역사에는 임울천, 주영섭 등의 글이 소개된 장에서 함께 읽으면 좋은 글로 각주로 이운곡의 “한 영화가 상영되기까지”(1938년 3월, 조광 4권 3호)가 언급된다.


영화의 인식론적 가치

오늘날 우리들이 보통 생각하고 있고 말하고 있는 것은 대체로 한 예술형식으로서의 영화인데 이것뿐이 영화의 문화적의의가 아님을 또한 알어야 할 것이다. 교육영화라는가 문화영화라든가 또는 과학영화라는 것이 있는것만 보아도 영화는 결코 단순한 예술의 한 양식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영화는 독립한 일개 예술양식으로써 자기목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어떤 다른 목적하에 어느 방법이나 수단을 말하자면 어떤 한가지의 문화적수단으로서도 성립되어진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의 문화적의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여기에 영화의 문화적 기능의 기중 근본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영화라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먼츰 인식의 가장 근대적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먼츰 인식수단으로서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와 필름과 스크린은 실재를 지금까지 모르든 방법으로 분해해 보여주는 까닭이다. 실재의 미세한 구조를 크로즈 업해 앞애서 보여줄 뿐이 아니라 (이것만 같으면 현미경사진이나 망원경사진 같은 것도 좋으나) 실재의 운동을 임의적 속도로써 재현애 보일수가 있으며 이에 의해서는 파괴의 물리학이나 탄도학의 실험도 할 수 있다.

미세시간의 전후관계도 결정할 수 있고 그후에 더욱 놀랠만한 인과율을 역행시켜볼 수 까지 있는 것이다.

이 최후의 관계는 물리학자로 손트가 광선보다도 빨리 상승하는 기구를 공상하므로써 겨우 상상하였던 것에 불과한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필름을 반대로 돌리는데에 의해 목적론의 모형과 같은 것을 우리들의 육안으로 넉넉히 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영화의 실재모사, 실재인식의 수단으로서의 탁월성에 대해서는 벌써 사계에 있어서 깊이 주목하고 있는 바이다. 과학영화, 교육영화 같은 것은 오로지 영화의 이 인식수단으로서의 탁월한 문화적 사용에 입각하여 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은 영화에 있어서는 비본질적인 역할이고 예술이외의 일이며 또는 예술이전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좌우간 그 문화적 의의와 가치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로써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영화의 인식수단으로서의 가치에 그리 주의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영화예술이라는 관념에 처음부터 사로잡혀버리기 때문에 인식수단으로서의 근본적인 영화의 역할을 그리 중하게 보지 안케되며 그 결과로 영화예술과 영화수단에 의하는 인식과 사이의 즉 이 “예술”과 이 “인식”과의 사이의 리얼리즘적 결합에서도 주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에 따라서 영화예술의 예술로서의 특유성까지도 확실히 분석이해치 못하는 결과로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의 예술로서의 특이성은 영화라는 인식수단의 특이성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인 까닭이다.

문학과 같은 예술과 과학과 같은 인식과를 따로 따로히 생각하는 한에서는 인식수단으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와의 근본적인 관계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러케 생각하여 보면 영화과 문화적으로 저급하다고 보는 오늘날의 교양있는? 문화인들의 속된 상식이 어데서 온다는 것도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속된 상식이 문화적이라고 생각하는 예술은 대체로 보아거의 문화적 내지 문예적 진루를 표준으로하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영화가 이에 비치여 보아서 문화적으로 위엄이 적어보이는 것은 말하자면 영화의 예술적 특생이 문예의 그런것과는 전혀 별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말함이다. 즉 영화의 예술적 척도는 문예의 척도와는 다른 인식상의 특색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 문화적 위엄이 적어보이는 것은 현대문화의식에 의한 문화의 척도가 영화이외의 예술에는 적합되어 있는 것이나 영화예술에서는 그것이 부적당한 까닭에 틀림없다.

우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화는 인식수단으로서도 극히 참신탁월한 방법을 제공하여 준다. 이것은 문예기타의 잔루의 예술에 근지에 포함되어 있는 인식수단을 훨신 초월한 새로운 인식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에 그것은 문화적으로 실로 우수한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단 영화예술이라고 할 때에는 예술로서의 문화상의 위엄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것은 참 기묘한 일인것 같으나 이는 곧 영화가 가진바 인식수단의 특성이 아직 상식으로서 명확히 파악되지 못한데에 그 원인이 숨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인식 또는 예술적 인식에 있어서 소위 리얼리즘에 있어서도 그 근저에 숨어 있는 기술적 공학적인 조건이 그리 문제시 되지 않고 말았으므로 이대로 본다면 영화와 같은 현실의 단순한 실제적인 복사적이고 사실적인 인식양식은 그저 저급하고 실용주의적이고 이에 따라서 문화적으로 저급한 것이라고 되어 왔으나 그러나 인식의 기술적 공학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혁한 영화기능에 대해 아직 이 견해를 억지로 가져다 부치려는 것은 정당한 태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영화기능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참신탁월한 기술적 공학적 조건은 예술에 있어서도 인식과 리얼리즘과의 의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을 잘 이해하는데서 비로소 영화의 문화적 의의의 적극성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영화의 문화적 가치도 이해할 수 있고 영화의 문화적 위엄도 확심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