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동시대 무빙이미지 Moving Image in Indonesia (2015)

이 글은 원래 2015년 프로젝트 비아 Project VIA에 참가한 후 작성한 결과보고서로, 간단한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수정하여 게재한다.(아직 수정중..)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미디어 센터로서 사회 전체 혹은 일부분이 하나의 제작 공동체로 영상을 통해 서로를 이야기 하고 서로 상호작용 하기를 열망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제작했던 수 많은 작품을 통해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노력해왔던 아카이브, 제작워크숍, 상영회 등은 한편으로 우리가 다루고 있는 미디어가 과연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했다. 그 동안 난 많은 영상 작품들과 설치, 여러 작가들의 활동를 보아왔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실험영화가 무엇인지, 다큐멘터리가 무엇인지, 우리의 영화역사가 과연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간헐적으로 많은 단서를 발견해왔다. 내가 지금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이 실험영화제에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붙이는 이유는 단지 형식적/제도적 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다. 나는 아직까지 실험영화가 의미하는 바의 구체적 개념에 대해 인도네시아의 작품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 중요하게,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사용되었던 비디오라는 개념이 결국에 모두 영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던 그 순간 지금의 영화제가 시작된 것처럼, 지속적으로 우리를 읽고 기록하려한다. 지금은 여기까지다.”
(2015년 현지 방문 중 필자와의 대화 중에서. 하피즈, 아키펠 자카르타 국제 다큐멘터리 & 실험영화 페스티벌 예술 감독)


현재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는 최근 10년 사이에 무빙이미지와 관련된 여러 실천이 본격 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 인도, 홍콩, 한국, 일본,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실험영화제, 독립영화제, 비엔날레 등이 개최 되며 영상 예술에 대한 여러 개념과 실천이 200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역사적 연구와 영상의 지역적 현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논문과 출판물이 발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30년대 대만 작가인 리-나오우가 중국에서 만든 사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공식적인 논문 발표와 함께 대표적으로는 중국에서 몇 년 전 발간된 민생미술관의 <중국 무빙 이미지 1988-2011>이 있다. 한편, 현재 중국에서는 이미 윌리엄 켄트리지의 책이나 보리스 그로이스의 중요한 현대 미술이론서 등이 번역이 되었으며 최근 1월에는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현재 가장 중요한 이론가이자 영상작가 중 하나인 히토 슈테예를의 최신작인 <Liquidity>가 상영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일주아트센터, 플랫폼, 인사미술공간을 중심으로 무빙이미지와 관련된 중요한 실천이 있어왔으나 현재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 할 수 있다. 대만이나 홍콩 역시 중국과 비슷한 맥락의 방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한 무빙 이미지 쇼케이스가 있어 왔다. 필리핀은 80년대에 수차례 실험영화제가 개최되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영상과 관련된 작가의 커뮤니티의 역사가 가장 긴 나라라 할 수 있다. 90년대 이전에 필리핀은 인도네시아에 비디오 아트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러 역사적 실천과 동시대 여러 기관과 이론가, 기획자, 활동가에 의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움직임 속에서 인도네시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시아의 무빙이미지의 역 사를 살펴보는데 있어 가장 흥미로운 나라라 할 수 있겠다. 커뮤니티 중심의 대안 공간의 활동, 관객 형성과 대형 이벤트의 기획과 조직, 미디어 교육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을 기 반으로 한 다양한 층위의 교육적 실천과 영상을 중심으로 대중을 매개하는 방식은 거시 적인 측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과는 별개로 가장 공동체적 이면서 민주적 인 성격을 갖는다.

포럼 렌뗑Forum Lenteng과 아키펠Arkipel

2002년 광주비엔날레 도록에서 앤드류 램은 아시아의 대안공간이 새로운 도시개념을 만 들어 낼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대안공간은 문화 생산을 변모시키는 기동력이다. 대안공간의 유동성과 다양성은 현체제들을 대체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의 대안공간 들은 탈식민화의 결과로서 세계화에서 예상치 못했던 도전들을 맞이하게 되었다.(중략) 아 시아의 대안공간에 대한 부메랑 효과는 아시아의 대안적 모델에 대한 전망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도시와 발달의 개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아시아의 대안적 성격을 전제로 한 문화적 차이들이다.”(2002년 광주비엔날레 Project 1 Pause Conception 프로젝 트 1 멈춤, 성완경 편집, 도서출판 광주비엔날레(2002), 46페이지) 당시 비엔날레에서 루 앙루파ruangrupa(인도네시아)는 유네스코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당시 루앙루파는 대안 공간으로 간주 되었으며, 퍼포먼스와 영상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공간의 테이블 위에 음식을 담아 놓고 작가들이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시식을 하고 그 흔적이 부패되도록 하였으며, 자카르타 현지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기록한 영상을 설치했다. 당 시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을 때 루앙루파는 자카르타에 설립된 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신생단체였는데, 현재 루앙루파는 페스티벌, 전시, 랩, 공연, 출판, 워크숍,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현재 자카르타에서 활동하는 거의 대부분의 실험영화 커뮤니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967년부터 1998년까지 오랜 하지 모하마드 수하르토의 독재 정권이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부정부패와 경제 실정의 책임을 묻는 국 민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민주화 분위기에 따라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폭발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욕구와 실천이 예술대학에서 미디어를 공부한 작가와 활 동가 그리고 저널리스트의 동시다발적인 활동이 일어났으며 네덜란드에서 미디어를 공부 하고 돌아온 일련의 사람들과 자카르타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작가들에 의해 물리적 공간 의 필요성과 시각예술의 전시 그리고 비영리 공간의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조성되었다.

공식적인 명칭은 자카르타 국제 다큐멘터리 & 실험영화 페스티벌 Jakarta International Documentary & Experimental Film Festival인 아키펠은 2013년에 시작해 올해로 3회의 영화제를 개최했다. 이 영화제는 표면적으로는 여느 영화제와 다를 것이 없다. 프로그램 을 살펴보면 포럼, 마스터 클래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의 상영 프로그램 이외에 전 시나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한다. 이 밖에 아시아의 젊은 기획자를 선정하여 작품을 소 개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포럼 렌뗑과 아 키펠의 관계는 포럼 렌뗑이 일종의 영화제 주관 단체의 성격을 갖는데, 이는 한국의 여느 영화제처럼 어떤 영화제의 조직위원회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영화제라는 연례 이벤 트는 대안적 미디어 센터이자 아카이브인 포럼 렌뗑의 새로운 미디어 프로젝트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여러 다양한 상황이 개입되어 있었지만, OK 비디오 페스티벌이 비디오 아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비디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편적으로 자카르타 에서매체를인식하는큰특징이자경향을파악해볼수있을것같다. 그들은매체를 예술적 표현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현상과 그것이 사회화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대 중을 매개하고 그 사이에 관객을 자리 매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작품의 주제 적, 질적인 측면을 고려한 기획보다는 그것이 매개하는 상황을 유심히 살피고 그 점에 대 해서 끊임없이 발언하려고 하는 경향을 갖는 것이다. 그 동안의 OK 비디오 페스티벌의 매회 행사의 주제와 접근 방식이 그러했다.

하지만 미디어를 접근하는 커뮤니케이션 지향적 태도는 영상 혹은 영화라는 작품의 사회 적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개념화하고 미학적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아키펠 -비주얼 잘란과 같은 블로그 기간의 비평적 플랫폼과 함께-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 센터와 거의 동일한 정치사회적 배경과 사회적 기능을 위해 설립된 미디어 센터로서 포럼 렌뗑이 한국의 여느 미디어 센터와 극명한 차이를 발생시키는 지점이다. 2000년대 초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광화문의 미디 어센터를 설립할 당시에 운영주체 선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 하였고, 당시 시민-영상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하게 되 었다. 미디어 센터가 지금 한국에서 어떤 과정을 지나오며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 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단순화하면 한국의 경우에는 영화가 미디어라는 개념 을 포용 하면서 대중을 매개 하려는 노력을 주로 ‘미디어 교육’-미디어 센터라는 제도화된 틀을 통해-이라는 방법론적 틀로 그 실천을 해왔다면, 인도네시아는 전혀 그 반대의 지점 에서 다시 ‘영화’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재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아키펠의 예술 감독인 하피즈(아키펠의 예술 감독인 하피즈 란차잘리는 루랑루파의 공동 설립자 중의 한명이자 자카르타 비엔날레를 기획하기도 했으며, 포럼 렌뗑을 공동 설립하 였다. 자카르타 예술위원회의 초기 설립과정에도 관여 했으며, 또한 루랑루파에서 주관하 는 미디어 아트 이벤트 중의 하나인 OK 비디오를 설립하기도 했다.)는 비공식적 인터뷰 에서 다음의 몇 가지 내용에 대해 강조했다. 우선, 커뮤니티 구축을 통한 관객 개발이다. 대형 이벤트를 위해서는 늘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결국 젊은 세대를 끊임 없이 흡수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아키펠은 다음의 두 가지 를 실행한다. 1 영화제 카탈로그를 하나의 영화 이론서로 만든다. 그리고 작품 소개부터 비평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글을 20대 부터 70대에 이르는 여러 세대가 참여하게 만들어, 젊은 세대 스스로 하나의 역사적 과정에 참여하게 하여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 2 페스티벌에 참여하길 원하거나 지속적인 활동을 하려는 모든 젊은 세대를 통해 일주일 간의 강도 높은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 워크숍에는 영화 상영과 비평에서 부터 인도네시 아의 미술에 이르는 폭넓은 내용이 포함된다.

하피즈는 루랑루파를 처음 설립할 당시 그들이 관객 개발을 위해 얼마나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설명하면서, 이런 점이 포럼 렌뗑이나 루랑 루파 모두 하나의 이름 아래에 얼 마나 많은 단체와 행사와 이벤트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 했다. 다시 말해서 대 부분의 행사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취향과 기획의 방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 한 이야기지만, 관객을 일단 유입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에 대해 끊임없는 토론과 실험 이 있어왔다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자카르타 비엔날레를 비롯한 거의 모든 예술 행사는 기획방향에 따른 중심 프로그램 이외에 거의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 를 포괄하고 있으며, 이는 문화예술 축제가 한편으로는 모호한 대중문화예술 축제와 특수 한 관심사를 표방하고 기획의 묘미를 살리는 미술행사 사이의 기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자카르타의 OK 비디오 페스티벌은 초기 비디오 아트 라는 단어가 가진 위험성과 협소한 의미를 피하기 위해, 비디오라는 이름만 남겨두었다. 2007년 OK 비디오 페스티벌의 주제 는 MILITIA였다. 이 단어는 어떤 변화와 권력을 잡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고 집단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공권력이 시민사회를 무장해제할 수도 그 반대로 시민사회가 변 화를 위해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루앙루파는 7일간의 비디오 워크숍을 12개의 다른 도시에서 15개의 장소에서 개최했다.

워크숍의 내용은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비디오 아트와 사회적, 정 치적, 문화적 조건과 연결점에 대해서 지역 공동체와 정보를 교환하고, 참여자들에게 편 집과 촬영, 기록, 구상 등의 일련의 모든 단계를 포함한 비디오 제작의 실질적 과정을 포 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의 일상을 기록하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점이 인도네시아 미디어 공동체 를 독특하게 하는 점인데, 일반적인 커뮤니티 미디어와 다른 커뮤니티에 중심을 둔 비디 오 아트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즉 이것은 공동체 중심의 어떤 매체 (필름 혹은 비디오)를 사용하는 일련의 집단적인 의식/무의식이 갖는 특수성에 대한 질문 인데, 이것은 서구의 실험영화가 개념화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미디어를 사용 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정시 사회적 주체로 투표를 행사하는 대표 개념으로 미디어 주체 성을 단순히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상상력과 미학적 실험을 증진시키고 도모하는 것에 강한 무게를 두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커뮤니키에 중심을 둔 비디오 아트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당시 페스티벌은 크게 두 개의 구분되는 형태로 진행 되었는데 Video In(서브미션을 통해 선정된 주제전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서 진행)과 Video Out(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카페, 쇼핑몰, 기차역 등 다양한 퍼블릭 스페이스 에 전시)을 통해 비디오를 둘러 싼 미학적 담론과 전시의 방향과 설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작가와 커뮤니티에게 이끌어 나가고 이와 관련된 역사적 실천을 동시에 이해 할 수 있도록 전체 행사를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독일문화원의 활동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 미문화원의 전시, 상영 등의 활동 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것처럼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독일문화원이 다른 여타 유럽국가의 아시아 주재 문화원의 활동과 가장 다른 지점은 미디어에 관한 전반적 인 교육뿐만 아니라 제작 워크숍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다는데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Lux Asia Workshop 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라보 베를린과Labo Berlin과 한국의 스페이스셀 Spacecell의 협력 하여 필름 워크숍과 상영회가 개최되었다. 독일문화원 측에서는 한국에 서 개최되는 이 행사를 위해 아시아 각국의 작가와 활동가를 연락하여 별도로 한국에 초 청하여 이 워크숍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연구자는 2009년에 작고한 화가 김점선과 인터뷰를 통해 70년대 서울의 독일문화원에서 개최된 실험영화워크숍에 대한 구 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이 역사의 결과물은 대표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 로는 김윤태의 <Wet Dream>(1992, 16mm, 15mins 30sec)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필리핀 마닐라에서 크리스토프 야네츠코Christoph Janetzko의 필 름 워크숍은(두 달의 준비 기간, 한 주 간의 이론과 미학적 세미나, 필름 장비를 다루는 기술과 프로덕션 진행 교육 1주, 촬영과 후반 작업에 각기 2주며 이렇게 대략 총 4달 동 안 진행되었다.) 당시 지역의 필름 커뮤니티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문화원 의 영화 장비와 교육과 상영 프로그램 및 아카이브는 어떤 영화학교나 단체의 그것을 훨 씬 뛰어 넘는 것이었으며(이 점에 대해 1986년 마닐라에서 2주간의 필름 워크숍을 진행 했던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에 의해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기술된다. “독일문화원은 지난 해 정말 많은 영화들을 소개했다.

그 결과로 고다르는 아무도 모르지만, 파스빈더의 영화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 다.”), 80년대 필리핀의 Mowelfund Film Institute, Philippine Information Agency(PIA), 정 부 소유의 필름 현상소 등의 물적 제도적 유산과 지역의 영화작가들의 공동체에 새로운 자극 을 주었다. 이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개최된 독일문화원의 실험영화워크숍은 마닐라 의 필름 워크숍 프로그램에 기반해 크리스토프 야네츠코에 의해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 시아, 한국에서도 개최되었다. 인도네시아 독일문화원의 경우에 영화 상영과 공연이 가능 한 극장을 운영하고 있고, 이 프로그램 매니저이자 인도네시아 필름 커뮤니키의 멤버 중 의 한 명인 리즈키 라츠Rizki Laz는 독일문화원에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 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지역의 영화공동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독일문화원의 활동과 지역의 여러 실험영화, 비디오 아트 등의 작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현지에서 괴테하우스라고 부르는 독일문화원의 극장은 필름 상영 장비 대여와 공간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의 필름 커뮤니키의 활동을 지원한다. 동시 에 독일문화원에서 올해 말에 무성영화 상영과 음악 연주를 함께 하는 영화 상영 이벤트 중의 하나인 프리츠 랑의 영화 이벤트는, 현재 인도네시아의 시네마테크가 공식적으로 자 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사에 대한 연결점과 영화에 대한 의식 을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서 제시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필름 매 체 교육이 현재 전무한 상황에서 필름이라는 지나간 매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역할 을 자카르타 주재 독일문화원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토 프라코사 & 랩 라바 라바-실험영화의 유산과 현재

얼마 전 타계한 고토 프라코사Gotot Prakosa은 인도네시아의 1세대 감독으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긴 감독이다. 자카르타 예술대 학 Jakart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공부하고 같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젊은 시절 1974년~1987년 사이에 그가 남긴 실험적 애니메이션은 자국 내에서 최초의 실험영화로 간주되고 있는 작품이다. 예를 들어 <Meta-meta>(1975~6, 16mm, color, 3min), <Impulse>(1976, 16mm, color, 2min)와 같은 작품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필름 리더나 기존 에 있는 필름을 재활용하여 스크래치나 페인팅 기법을 사용하여 만든 애니메이션 작품이 고, <Koen Faya Koen>(1979, 16mm, color, 3min), <A=Absoulte, Z=Zen>(1983, 16mm, color, 4min)과 같은 애니메이션 작품은 이야기가 없이 사물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편집 방식과 구조적 실험을 통해서 만든 작품이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고토 프라코사의 작품 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전통무용가인 사르도노 쿠수마 Sardono W. Kusuma의 퍼포먼 스를 영화적으로 재가공하여 남긴 일련의 작품이다.

대표적인 이런 경향의 작품이 밴 쿠퍼 엑스포에서 인도네시아 국가관에서 선보인 <Vancouver-Borobodur>(1986, U-matic, color, 20min)와 <Wahyoe and his Works>(1989, U-matic, color, 20min)이다.

철학자이자 화가인 나하르Nashar(1928-1997)은 자카르타의 1963 Cultural Manifesto의 서 명자이자 자카르타 예술대학의 설립자였다. 화가이자 철학자, 다양한 글쓰기의 실천과 교 육자로서의 그의 행보가 실질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생긴 예술대학을 어떤 방식 으로 운영했으며, 이후에 이 학제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했는지는 별도의 연구과제로 남겨 둔다. 하지만 루앙루파의 공동 설립자이자 자카르타 예술대학을 졸업한 하피즈는 자카르 타 예술대학이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생긴 예술대학이었으며, 당시의 학제가 명시적으로 전공의 구분이 있었지만 모든 전공의 수업이 나뉘지 않고 총체적으로 종합되어 있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이후에 포럼 렌텡의 활동이나 저널리즘, 영화, 미술 등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모 여 미디어 제작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활동, 영화제작, 전시,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의 유산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고토 프라코사의 영화들이 가진 다양한 성격들, 필름의 물질적 성격을 스스로 체화하며 남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무용가와의 협업 등 여러 편의 작품은 그가 인도네시아 1세대 영화감독이자 최초의 실험영화감독으로 간주되면서 동시에 인도네시아에서 실험영화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되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재 필름 인도네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2500편이 넘는 작품들 중에서 디지털로 목록화 작업이 마무리된 약 700여편의 작품 중에서 실험영화라는 범주에 속하는 감독은 고토가 유일하다.

예술가의 현상소 Artist film Lab와 관련된 전 세계적인 움직임과 필름 매체에 대한 욕망 이 실험 영화 쪽에서 다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상소라는 것은 사실 1차적으로 산업을 위한 것이지 개인이나 작가집단이 소유할 수 없 는 것이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유럽 중심의 작가조합의 역사에서도 현상기나 인화기를 직접 소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미학적 실천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곳은 영국과 독일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으로 정신적인 측면에서 지난 역사적 실천의 유산과 함께 90년 대 초 부터 본격화 되었던 매체의 급진적인 변화는 필름 매체를 둘러싼 여러 기술과 장 치가 산업적 소유주의 대 이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우선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예술가의 현상소 운동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여개 이상의 단체가 설립되 어 운영 중에 있으며, 가장 최근에 생긴 곳은 영국의 이스트 런던 대학의 미술대학이 보 유하고 있던 장비를 실험영화 작가이자 현지 박사과정 학생이 모여 다시 장비를 세팅하 고 학교 안에서 현상소를 열었다. 예술가의 현상소 운동이 시작된 것은 프랑스 남부의 작 은 도시인 그르노블인데, 이곳의 일련의 현상 기술자와 음악가들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협업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중 그들 스스로 필름을 현상할 필요성을 느끼고 장비와 공간 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당시 유럽 전역으로 이와 유사한 성격의 실천이 급격하 게 퍼지고 있었는데, 당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대학에서 필름 매체를 활용한 영화교육이 전면적으로 개편되고 관련 장비가 버려지거나 외부로 유출되고 있던 상황이 었다. 동시에 상업적인 필름 현상소와 국가에서 운영하는 필름 현상소도 마찬가지의 경로 를 거치게 되었는데, 이들의 가진 공간과 장비를 일군의 작가 혹은 단체가 넘겨받아 운영 하는 형태도 급증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생긴 랩 라바 라바Lab Laba Laba는 한국의 스페이스셀 Spacecell과 일본의 비정기적인 활동을 포함하면 공식적으로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생긴 예술가들의 현상소이다. 일본의 경우가 유럽의 군소 지역의 활동가 다소 유사하게, 일군 의 작가이가 교육자인 사람들에 의해서 별도의 캠프나 사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일시적 으로 개방하여 필름 매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치로 수에오카 Sueoka Ichiro, 요 오타 Yo Ota와 같은 실험영화감독들이 이러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굉장히 특이한 사례인데, 국가에서 운영하던 현상소인 PFN(Produksi Film Negara)에서 사 용하던 건물을 국가에서 임시로 사용허락을 받아서 작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카르 타의 현상소의 시작은 인도네시아의 3세대 영화감독 중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작가로 간주되는 에드윈Edwin에 의해 시작되었다. 사실 그는 자신을 실험영화감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필름 매체가 가진 교육적 중요성과 영화언어의 풍요로움 그리고 자국의 실험영화역사에 대한 자각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이미 기존의 영화서사에 대한 대안을 에세이 다큐멘터리와, 풍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실험영화, 자연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실험 적 단편을 이미 오래 전 부터 제작해왔다. 인도네시아에서 필름이 더 이상 현상과 인화가 불가능해지자 공간과 장비를 찾고 있던 와중에 그는 자국 내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영 화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활용해 PFN이 사용하던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필름 매체 에 대한 관심과 실험영화를 하고 싶어 하던 일군의 젊은 세대가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 었다. 이 공간은 필름 현상소이자 당시 제작되었던 여러 필름이 현재도 보관되고 있는 필 름 아카이브이다. 젊은 작가들은 이 공간을 재정비하고 수제 현상이 가능한 암실과 인화 장비 필름 스캐너 등의 장비를 구축하였다. 이 기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필름 현상소를 운영하는 리차드 투오이 Richard Tuohy의 도움으로 광학인화 장비를 개조하여 실질적인 작품제작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필름을 설치할 수 있는 루퍼나 다양 한 장비를 마련하여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필름언어가 동시대 미술에서도 실질적인 설치 의 형태로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하였다. 이를 통해서 몇몇 작가들이 2015년 개 최된 OK 비디오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자카르타 현대미술관에 8mm 필름 설치, 부패된 필름을 스캔하여 70년대 인도네시아에 여행온 서구인 들의 사적 촬영 푸티지를 섞어 만 든 실험영화를 싱글 채널 비디오로 상영하였으며, PFN에서 보관하고 있는 프로파간다 영 화를 골라 관련된 작품 제작의 역사적 기록을 모아서 아카이브 설치를 하는 등 구체적인 작품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올 봄에는 랩 공간과 실험영화 커뮤니티 구축을 위해서 공 연, 전시, 상영, 공간 내의 그래피티 작업 등을 선보이는 행사를 PFN 내부에서 개최하였 다. 다만, 최근 정부에서 이미 PFN이 소유하고 있는 부지의 일부를 맥도날드에 매각하였 으며, 현재 랩 라바 라바가 사용하고 있는 원래 현상소 건물 역시 매각 혹은 월 임대료를 받는 형식으로 전환하려는 결정을 내려 모든 장비를 철수하고 다른 장소로 옮길 예정에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내셔널 뮤지엄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부차원의 시네 마테크 역시 그러하다. 필름 인도네시아를 통해 기본적인 필름 카탈로깅과 지속적인 필름 스캐닝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적 기금으로 유지되고 있어 여전히 많은 필름이 보관 창고에서 어떤 필름이 있는지 조차 파악이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랩 라바 라바, 포럼 렌뗑, 아키펠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화’에 대한 개념을 찾기 위해 여전히 많은 개별적 연구가 진행 중이다. OK 비디오에 의해서 현재 인도네시아 에서 최초로 영화 장비가 수입된 경로와 공식적인 상영 기록 등을 연구 중에 있으며 많 은 성과가 있어 그 결과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랩 라바 라바 역시 그들이 처음 국가에서 프로파간다 생산을 위해 운영하면 필름 현상소 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은 자신들의 활동이 어떤 특 정한 사람들의 작품활동 공간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공간에 무수히 쌓여있는 버려진 필름과 장비들이 그들에게 던진 질문은, 어떻게 지연된 아카이브의 시간을 현재화하고 활 성화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2015년 자카르타 비엔날레에 참가한 랩 라바 라 바는 암실을 마련하고, 필름 스캔과 아카이브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행사를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