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과 그 너머: 이행준의 확장영화

김지훈

이행준의 확장영화(expanded cinema) 작업들은 미국의 구조영화(structural film)와 영국의 구조-유물론 영화(structural-materialist film)의 미학적, 기법적 전제들을 현대적으로 연장시켜왔다. 플리커 효과, 루프 프린팅 등을 통해 영화의 물질적 구성성분과 기법적 과정들 자체를 밝히는 것이 미국 구조영화의 출발점이었다면, 이행준의 작업은 말콤 르그라이스(Malcolm Le Grice)가 규정했던 확장된 형식주의에 대한 규정에 더욱 충실하다. “나는 이런 기법들에 다른 관심사들을 더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물질로서의 셀룰로이드, 사건으로서의 프로젝션, 그리고 구체적 차원으로서의 지속(duration)”이다.  확장영화라는 용어는 너무나 다양한 실천들과 기법들을 포괄하기 때문에 정의하기 힘들지만, 관습적인 영화장치와 영화적 경험의 전제들 – 단일 스크린, 이미지의 환영성, 관람자의 부동성, 극장이라는 제도화된 관람환경, 재현된 사건으로서의 이미지에 억압되는 상영과 관람의 현재성 –을 넘어서는 영화적 작업들의 총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작업들은 영화매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관습적인 영화장치의 규범 바깥에서 추구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며, 기록된 매체로서의 영화 대신 프로젝션과 관람 상황을 현재화시킨다는 점을 일정한 공통분모로 삼는다.  영사기의 비관습적 조작, 필름스트립의 다양한 노출, 멀티스크린의 사용, 사건(event)으로서의 프로젝션 등은 미국과 영국의 아방가르드 영화가 1970년대에 발전시킨 확장영화 프로젝터들의 주요 기법들이었다. 이행준의 확장영화 작업들은 이 기법들은 물론 그것들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들 – 영화장치의 본성, 영화매체의 구성성분들과 그 상호작용,  영화적 경험의 구성과 한계 – 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의 작업들은 A. L. 리즈 (A. L. Rees) 의 말을 빌리자면 70년대 영국 아방가르드 확장영화들이 만들어냈던 “물질적인 행위-이미지 (material action-image)”의 전통 하에 있으며, “필름 시대의 종말에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는 때에도 무빙 이미지 제작의 조건들과 역설들을 탐구하는” 오늘날의 서구 확장영화 실천가들과 나란히 놓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험영화학자 조너선 월리(Jonathan Walley)는 2000년대 이후의 필름 프로젝션 퍼포먼스에서 나타나는 미학적 경향을 60년대 후반-70년대의 확장영화와 비교하여 규정한다. 과거의 확장영화를 규정지었던 욕망은 영화장치의 물질적, 기법적 구성성분들과 그것들의 표현적 잠재력에 대한 탐구였다. 이러한 실험들에서 이미지의 재현적, 상징적 차원들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필름 프로젝션 퍼포먼스는 상영되는 이미지의 재현적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필름의 물질성을 시청각적 표현 가능성을 위해 극대화하거나, 프로젝션의 상황이 환기시키는 최면적, 신화적 가치들도 포용한다. 월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경향들은 과거의 확장영화 퍼포먼스를 규정지었던 필름의 매체 특정성에 대한 관심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최근의 퍼포먼스들은 “매체 특정성이 한 예술의 물질적 기반을 그 자체로 또는 하나의 미학을 창조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찬양하지 않았음을, 매체 특정성은 항상 이를 포용하는 실천들이 대표하는 의미들과 가치들에 대한 것임을” 입증한다. 월리의 견해를 연장하자면 오늘날의 필름 프로젝션 퍼포먼스들은 과거 아방가르드 확장영화의 유물론적 관심사들을 전통적인 유물론적 관념 – 즉 필름의 매체 특정성에 대한 재확인 – 을 넘어 새로운 의미와 표현적 가치들과 적극적으로 연루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행준의 확장영화 프로젝트들은 유물론에서 출발하되 유물론을 넘어서는 충동들을 여러 시도들을 통해 표현해 왔다. 


물질성과 사건: <필름 워크>와 <강의>

2011년도에 초연된 <필름 워크 (Film Walk)>는 필름 퍼포레이션(perforation: 필름 가장자리에 규칙적으로 뚫린 구멍)이 영화의 영사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기계장치들과 결합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변환시키는 퍼포먼스다.  겉으로 보면 이 퍼포먼스는 16mm 영사기에 걸린 필름스톡(film stock)을 감독이 손으로 잡고 길게 뽑으면서 공연장 이곳저곳을 거니는 일련의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행위들의 집합이 아니다. 이행준은 필름 이미지가 상영되기 위해 요구되는 올바른 조작을 무시하고 필름 퍼포레이션을 16mm 영사기의 사운드헤드에 물리게끔 했다. 본래 필름의 옵티컬 트랙이 걸리는 사운드헤드에 퍼포레이션을 걸고 생필름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퍼포레이션 자체가 사운드트랙으로 기능하게 된다 . 또한 필름을 잡아당기는 속도와 방향이 가변적이기 때문에 이 노이즈 사운드의 본성은 기계적으로 결정된 동시에(하나의 구멍은 영사기와 결합되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게 된다) 즉흥적이다. 

<필름 워크>는 영화장치의 구성성분들인 필름스트립의 디테일들과 영사기는 물론 그것들이 결합하는 과정들을 사건으로 극화한다. 이 과정들은 르그라이스가 말하는 ‘실시간/공간(Real Time/Space)’이라는 관념을 적용한 것이다. 프로젝션 사건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지점에서 “구성성분의 요소들, 그들의 시공간적 분배, 관객의 관개가 영화 구조의 중심적 측면으로서 통제된다.” 이행준은  르그라이스의 관념과 공명하는 자신의 관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소리의 수는 정확히 시간의 길이와 일치한다. 퍼포레이션 사운드의 축적(Sound Accumulation)은 프레임의 축적을 대신한다. 이것은 아주 투명하고 교육적이며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퍼포먼스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필름 워크>의 의도는 영화매체를 물질과 지각의 차원에서 현전(present)하게 하는 것, 제작과 지각의 양태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70년대 영미권 아방가르드 확장영화의 관심사에 부합한다. 이 시기 확장영화 프로젝트들은 “영화에서 시간 경험과 공간 경험의 상호의존성에 집착하고, 지속을 문자 그대로 드러내는데 필요한 조건으로서의 제시의 공간과 과정을 문자 그대로 드러낸다.” <필름 워크>에서 드러나는 “과정들”은 단순히 필름스트립과 영사기라는 물적 토대들의 노출을 넘어선다.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공간은 영화장치가 가능하고 영화적인 경험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장소들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극장이지만 이는 필름이 현상되는 암실, 편집실, 영사실 등 다른 장소들까지도 포괄한다. 이행준은 자신의 작업이 이 모든 장소들의 개별적 특성들과 그곳들에서 벌어지는 작업들, 그리고 이 장소들의 긴밀한 공존에 대한 탐구임을 밝힌 바 있다. “우리에게는 저장소, 회합의 공간, 제작 스튜디오, 극장, 전시장 등 다양한 성격의 방이 필요하며, 각각의 방은 때로는 보이지 않고 한계와 가능성을 위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여러 공간은 나란히 병치되고(때로는 보이지 않거나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서로에게 완전히 열려 언제나 새롭게 배치된다.”

이 모든 과정들의 가시화는 역으로 말하면 영화장치를 규정하는 결정적 구성성분의 부재를 뜻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는 영화가 기존의 예술과 매체의 개념에서 변별되는 지점이 이질적인 요소들의 유기적 집적(aggregation)으로 이루어진 장치(apparatus)라는 관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즉 영화장치를 이루는 요소들은 필름스트립, 스크린, 영사기, 최종적으로 스크린에 투영되는 이미지 등이지만 그들 중 어느 것도 영화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적 구성성분의 부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영화장치의 다면적인 요소들을 (필름 프레임, 셀룰로이드의 표면, 영사장치 등) 비관습적으로 노출하고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영화의 이미지와 경험을 지워나갔던 실천들이 영미권의 아방가르드 확장영화였다. 현대의 필름 퍼포먼스 실천가인 루이스 레코더(Louis Recorder)가 말하듯 “구조영화는 필름 자체에 대한 일종의 엔드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조영화는 형태로서의 영화라는 전제들을 자리잡게 하려는 형식주의적 욕망 속에서 자신의 대상들 또한 지우는데까지 나아갔다. 필름의 죽음은 주어진 것이다.” 

<필름 워크>에서 관객은 영화장치의 구성요소들과 영화적 과정들의 장소들이 환기되는 동시에 부인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영사기는 작동하지만 표준적인 영화적 경험을 위해 필요한 빛과 이미지를 투영하지 않는다. 소리는 필름스트립에 본래 기록된 사운드를 부정하고 광학적인 사건의 부재를 지시하면서 방출된다. 이 퍼포먼스에서는 암실에서의 작업이나 영사실에서의 작업이 환기되지만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그 어느 곳도 아니며, 전통적인 극장의 바깥(갤러리)이다. 평론가 유운성이 이 모든 것들을 지적하면서 “시네마의 철저한 부재를 통해 시네마를 지시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시네마의 한계와 기저를 지시하면서 시네마의 바깥으로 탈주한 역설적 결과는 70년대 아방가르드 확장영화가 도달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행준은 이러한 역설을 <필름 워크>에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필름 워크>에는 영화의 물질성이 사건으로서 펼쳐지지만, 그 사건은 영화의 부재에 대한 한 편의 즉흥적 라이브(영사기를 동원한 즉흥음악적 퍼포먼스라고도 말할 수 있는)는 형태를 띠게 된다.  

영화장치의 구성요소와 과정들의 수행, 그리고 이를 통한 영화의 근본적인 복합성과 부재에 대한 인식은 <강의 (A Lecture, 2013-14, 그림 2)>라는 또 다른 프로젝션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이 퍼포먼스는 실험영화감독이자 이론가인 홀리스 프램튼(Hollis Frampton)이 1968년 10월 31일 뉴욕 헌터칼리지(Hunter College)에서 처음 행한 동명의 퍼포먼스를 영화평론가 유운성과 함께 리메이크한 것이다. 프램튼은  16mm 영사기 한 대와 스크린을 설치하고 백색의 공간을 부각시키는 빛만을 상영했다. 여기에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의 목소리로 사전녹음한 텍스트를 재생시켰고, 붉은 젤과 파이프 클리너를 활용하여 스크린에 색채 필터링 효과를 더하거나 빛의 흐름을 가로막는 등의 조작을 수행했다. 프램튼이 직접 쓴 텍스트는 영화장치의 본성과 영화적 경험, 그리고 필름의 물질성에 대한 성찰들을 포함했고 그의 일련의 수행은 이러한 성찰들을 관객에게 현전시켰다.  예를 들어 프로젝터가 켜질 때 스노우의 목소리는 스크린의 존재, 프로젝터의 기계적 본성, 스크린을 채우는 빛의 사각형을 환기시키는 식이다. 

이행준과 유운성은 프램튼의 퍼포먼스와 텍스트에 포함된 화두들을 계승하는 동시에 더욱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는 변형들을 가했다.  이행준과 유운성의 리메이크는 보존된다.프로젝션을 실시간과 공간이 결부된 물질적 사건으로 취급했던 프램튼의 의도, 영화장치와 영화적 경험, 필름의 물성에 대한 프램튼의 성찰을 보존한다. 다른 한편 유운성은 프램튼의 원래 텍스트를 다듬고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눈], 크리스티앙 메츠의 [상상적 기표], 세르주 다네의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 롤랑 바르트의 “영화관을 나오면서” 등에서 빌려온 문장들을 새롭게 삽입했다. 메츠와 바르트의 텍스트는 영화장치의 심리적 기제와 영화적 경험의 감각적 본성을 일깨웠고, 베르토프의 텍스트는 카메라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프램튼의 퍼포먼스에서 사용된 레코더 대신 유운성 자신이 텍스트를 낭독했다. 

이행준은 프램튼의 퍼포먼스에서 사용된 본래의 절차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절차들을 더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작업했던 프로젝트들의 8mm 필름스트립들을 별도의 영사기에 걸고 당겼다. 이 과정에서 메인 프로젝터의 밝은 붉빛은 필름스트립들의 표면과 포토그램들, 퍼포레이션들, 열화된 흔적들을 대상으로 제시했다. 이 부분에서 유운성(프램튼)의 나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필름을 손에 들고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린 그것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일련의 작은 사진들의 띠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영사기가 이 작은 정지된 사진들을 가속시켜 움직이게 만드는 거죠…어떤 경우이건 한 가지만은 언제나 영사기 안에 있습니다. 바로 필름이죠. 필름이야말로 우리가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영화는 필름에 관한 것인 거죠.” 이행준은 프램튼의 원래 퍼포먼스에서는 시각적으로 부재했던 – 즉 텍스트로만 존재했던 - 필름의 물질성에 대한 성찰을 자신의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는 영화장치의 물질성과 사건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실시간적 수행의 차원에서 구현한 또 다른 방법이다. 


유물론적 파운드 푸티지: <균열의 몫>, <사운드의 형이상학적 채집>

이행준의 또 다른 작업들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습득영상)을 활용하여 홍철기 등의 전자음악/즉흥음악 작가들과 협연한 일련의 멀티스크린 프로젝션 퍼포먼스들이다.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에서 카메라로 새롭게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한 영상들의 선택과 처리, 재배열로 이루어지는 작업들을 지칭하는 파운드 푸티지 영화제작(found footage filmmaking)은 주로 기존 영상을 원래의 출처에서 탈맥락화하고 거기에 담겨진 잠재적 의미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는 맥락에서 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파운드 푸티지 영화제작자를 규정했던 방식은 수집가나 역사가의 태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가 실험영화사에서 파운드 푸티지를 다루고 정의했던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이행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운드(Found)’라는 단어가 뜻하는 모호함은 ‘수집과 채집’ 혹은 ‘발견과 습득’과 같은 태도를 상정하며 역사가, 민속학자 등으로 영화작가의 위치를 확대하려는 인식은 파운드 푸티지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이행준의 이와 같은 서술은 파운드 푸티지의 ‘역사가적’ 또는 ‘민속학자적’ 지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파운드 푸티지를 활용하여 영화장치의 작동방식과 구성성분을 탐구했던 유물론적, 구조적 작업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 전통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에 속하는 르그라이스의 <베를린의 말 (Berlin Horse, 1970)>, 폴 샤리츠(Paul Sharits)의 < 간질성 발작 비교 (Epileptic Seizure Comparison, 1976)>. 피터 체르카스키(Peter Tscherkassky)의 <외부 공간 (Outer Space, 1999)>, <빛과 사운드 기계를 위한 지침서 (Instruction for a Light and Sound Machine, 2005)> 등은 옵티컬 프린팅, 필름 표면의 물리적, 화학적 변환 등을 통해 재현적 영화의 관습적 지각을 파괴하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영화의 구성요소에 대한 다른 지각양식을 관객에게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법들은 미셀 피어슨(Michele Pierson)의 용어를 빌리자면 “필름 프레임 내에서 이미지들을 조작하는 기법들로서의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적 양식”인 특수효과(special effect)의 사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특수효과들에 근거한 파운드 푸티지 작업들은 영화가 “물질적 평면성, 얼룩, 빛, 운동과 이미지에 재현된 현실 사이의 긴장의 공간에서 성립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을 의도한다. 이행준의 파운드 푸티지 작업들은 특수효과의 다양한 활용들을 통해 바로 이 ‘긴장의 공간’을 개방하고 필름의 물질적 범주들이 펼치는 지각과 의미의 효과들을 탐구한다. 

사운드 아티스트 홍철기와 함께 수행한 <균열의 몫(Cracked Share, 2004-6, 그림 3)>, <사운드의 형이상학적 채집 (Metaphysics of Sound, 2007, 그림 4)>은 셀룰로이드 더블 프로젝션 퍼포먼스다. 이 두 작품애서 푸티지의 화학적 이멀전 또는 푸티지의 물질적 구성성분들은 푸티지의 지표적 성격을 끊임없이 잠식한다. <균열의 몫>은 화학적으로 산화하거나 부패된 필름의 흔적들을 필름의 균열들로서 드러낸다. <사운드의 형이상학적 채집>은 프레임의 외곽에 존재하는 음향 트랙을 인화하여 스크린 내부에 드러낸다. 이 두 퍼포먼스는 영화매체의 내재적 균열들 자체를 시청각적 경험으로 변환한다. 필름스트립을 이루는 스프로켓 홀의 균열, 포토그램과 포토그램 사이의 균열이다. 이 물리적 균열들은 곧 영화장치를 이루는 과정들 사이의 균열들을 환기시킨다. 필름 프린트와 편집 사이의 균열, 편집되고 처리된 프린트가 영사기에 걸려 상영되는 과정에서 존재하는 균열.  홍철기의 퍼포먼스가 이미지 트랙과 별도로 턴테이블 스크래칭을 이용하여 즉흥적으로 노이즈를 재생할 때 이 두 작품들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근본적인 균열을 건드린다. 사운드의 즉흥적이고 기계적인 오작동은 이미지 트랙의 화학적, 물리적 흔적들이 펼치는 역동적인 시각적 자극들과 지속적으로 충돌함으로써 시각과 청각의 자연스러운 동기화를 파괴한다. 이 두 예술가들의 말을 빌자면 “사운드의 비-조직(dis-organization)이라는 원칙은 시청각적 퍼포먼스 공간의 비-조직(또는 균열된 조직)이라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유물론에서 존재론으로: <환상의 여학생 부대> 

<환상의 여학생 부대 (Phantom Schoolgirl Army, 2014-present)>에서 이행준은 자신의 유물론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업방식을 파운드 푸티지에 대한 역사가적 접근방식으로 연장시킨다. 이 프로젝트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언론과 소문을 통해 유포되었던 가상의 여학생 암살단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이야기는 교복 스커트 안에 감춘 권총으로 정부군을 사살한 여학생들이 있다는 이 이야기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유령성을 환기시킨다. 이행준은 이전에 여러 번 협업했던 홍철기와 함께 여순사건과 관련된 논문들과 자료들을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취했던 자료는 순천의 한 사진관이 보존하고 있었던 대량의 증명사진 필름들이었다. 냉전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개인 사진관에서 생산된 이 필름들에 사진적 기록의 공적 의미를 불어넣는다.  증명사진은 19세기부터 인간의 관상학적 특징들을 기록하고 이를 인종과 성별, 계급에 따라 분류하여 통치술에 활용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와 지식이 결부된 아카이브적 실천이다. 이행준은 이러한 증명사진의 위상을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의식하고 있었다. 여순사건 당시에 사용된 것들은 아니지만 그가 사진관에서 획득한 필름들은 냉전 체제 하에 살았던 민중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담아낸 흔적들이었고, 그런 만큼 근대화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통치술을 환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상의 여학생 부대>를 다루면서 이행준은 단지 초상사진의 표상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이행준은 아날로그 시대의 초상사진의 제작과정과 거기에 사용된 재료들의 물질적인 차원들 또한 염두에 두었다. 아날로그 사진판은 필름과 동일한 질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물리적 손상과 화학적 변화에 종속된 시간성을 가진 매체다. 또한 아날로그 초상사진은 불을 붙이면 산화하면서 밝은 백색 빛을 내는 마그네슘이라는 또 다른 질료를 갖게 된다. 이행준은 아날로그 사진판과 마그네슘이라는 이 두 질료를 초상사진 원판의 변환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수많은 아날로그 사진판을 디지털로 스캔하여 이를16mm 필름으로 프린트했고,  이 과정에서 백색 프레임들과 흰색 또는 검은색의 원형을 포함한 프레임들을 삽입하여 플리커 효과를 발생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들을 통해 아날로그 사진판의 물질성은 필름의 물질성으로 연장되었고, 플리커 효과는 아날로그 초상사진 촬영에 쓰인 플래시 효과를 환기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들을 고려할 때 나는  <환상의 여학생 부대>가 아날로그 사진의 지각 양식과 재현 체계에 대한 문화적, 예술적, 물질적 미디어 고고학( media archaeology)을 수행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차원에서 보면 아날로그 사진은 19세기 후반부터 100여년 간 현실의 기록물을 생산하고 유통시킨 매스미디어였지만 디지털화에 밀려 대중적 효용성을 상실했다. 이행준은 지금은 버려지고 낡은 미디어로 인식되는 아날로그 사진이 오늘날 망각된 기억의 보관소로 잔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사진을 단순한 올드 미디어(old media)가 아니라 잔여적 미디어(residual media)로 취급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환상의 여학생 부대>에서 이행준이 아날로그 사진판을 작업한 방식은 크라우스가 말한 “매체의 재창안(reinventing the medium)”에 부합한다.  크라우스는 사진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한 매체가 자신의 전성기를 마치고 쇠퇴(obsolescence)에 접어들 때 “미적 생산과의 새로운 관계로 진입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매체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예술적 실천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매체는 “주어진 기술적 지지물(technical support)의 물질적 조건들, 관습들”로 재정의되며 이것들은 “미래를 향해 투사적(projective)인 동시에 기억을 낳는(mnemonic) 표현성의 형태들을 발전시키게끔 한다.” <환상의 여학생 부대>는 아날로그 사진의 “물질적 조건들(사진판, 마그네슘)”과 제작 및 재현의 “관습들(초상사진의 시각성, 플래시의 기능)”을 탐구하고 그것들이 가진 기억의 능력을 활성화하며, 사진과 영화를 둘러싼 정지와 운동의 변증법을 미적으로 재구성한다. 이 모든 미디어 고고학적인 차원들 – 문화적, 물질적, 예술적 차원들- 은 <환상의 여학생 부대>가 영미권 구조영화의 유물론적 관심을 계승하는 동시에 이를 미디어의 존재론에 대한 탐구로 연장한 결과임을 입증한다. 

<환상의 여학생 부대>는 지금까지 여러 버전으로 구현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장편 다큐멘터리로 연장될 예정인 프로젝트다. 2014년 일민미술관 “토탈 리콜” 전에서는 다수의 투명 플라스틱 판을 걸고 프로젝터의 광학적 인상들 – 수많은 초상사진 원판들과 추상적 원형들 – 을 스크린은 물론 갤러리 벽 주변에 산란시키는 설치 방식을 취했다 (그림 5). 같은 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오작동라이브러리” 전에서 이행준은 자신이 틈틈이 수집한 과학적 기록영화 화면들을 소형 모니터에 여러 채널로 설치하고 이를 필름 프로젝션과 병치시켜 초상사진이라는 기록물을 더욱 포괄적인 시각적 근대성(즉 영화가 어떻게 이성과 과학에 대한 믿음을 자신의 시각성으로 구현했는가)의 맥락에 위치시켰다. 같은 해 11월 그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홍철기와 즉흥바이올리니스트 이옥경과의 협연으로 멀티프로젝션 작품들로 옮겼다. 이 각각의 버전들이 어떤 효과를 낳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차후의 과제로 미루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아카이브를  기억과 망각, 현전과 부재, 흔적과 파괴의 변증법이라는 이념으로 접근한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변증법은 지달이 말했던 ‘영화의 물질적 구성요소들과 재현된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형성하는 변증법과 합류한다. 


이행준의 작업은 오늘날 영화의 미디어 환경에서 유물론적 실천이 갖는 의미를 잘 드러낸다. 덕 드 브루인(Dirk de Bruyn)은 오늘날의 필름 프로젝션 퍼포먼스를 매체의 비물질성을 강조하는 디지털화에 따른 대안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이행준은 셀룰로이드를 쇠퇴로 보고 셀룰로이드 자체의 물질성을 부각시키는 것을 필름의 충실성으로 환원하는 물신주의적 경향에 반대한다.  오히려 그는 과거 아방가르드 확장영화의 유물론적 유산들을 충실히 탐구하면서 필름의 물질적, 기법적 구성성분들은 물론 그것들의 비관습적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의미들을 탐구한다. 그 다양한 의미들을 통해 이행준의 확장영화 실천들은 유물론을 넘어서는 지각과 기억의 탐구를 보여준다. 이는 한국의 실험영화뿐 아니라 오늘날 서구의 실험영화라는 조망 속에서도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한다. 

HANGJU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