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방 INVISIBLE ROOM

이행준

필름은 종이보다는 두껍고 책보다는 얇으며, 네모 혹은 둥근 것에 담겨 있다. 필름은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길고, 무거우며 매일매일 자라는 거대한 육식동물과 같다. 필름은 4의 배수를 좋아한다. 필름의 시간은 길이와 무게로 환산할 수 있다. 필름은 회화와 달리 고유한 본성인 색과 속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다빈치의 그림과 달리 뤼미에르의 필름은 계속해서 다른 매체로 번역되고 번안되고 부호화되고 암호화된다. 앤디 워홀의 작품에는 필름의 속도가 다른 매체로 번역될 수 있다는 기술적 환상—디지털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필름의 판형은 다양하다. 포맷이라 불리는 다양한 필름의 형태는 작가에 의해 고안되기도 했고 산업적 표준화의 열망으로 탄생되기도 했다. 책과 달리 필름의 판형은 표준화를 열망했다. 작은 판형은 냉전 시기 스파이들이 스틸 카메라에 사용하기도 했었고 오늘날 사용되는 가장 큰 판형은 자연의 광폭함에 억눌린 어느 캐나다인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이미지와 속도의 산업은 필름을 무한히 복제하여 전 세계에 보내고자 했다.


퍼포레이션(perforation)이나 스프라킷 홀(Sprocket hole)이라 불리는 필름에 있는 이 좁은 틈(slit)은 카메라와, 인화장치, 편집기, 영사기 속에서 필름을 움직이기 위해 톱니바퀴와 맞물린다. 필름 퍼포레이터(film perforator)가 있다면 쉽게 균일한 간격과 크기로 구멍—물질로서 필름을 규정하는 유일한 단서—을 뚫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을 필름—필름처럼 그 위에 구멍을 뚫고 일정한 폭으로 재단하여 영사가 가능한 두께라면 더 좋겠지만—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필름의 구멍은 프레임의 수와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카메라와 영사기 속의 톱니바퀴와 게이트는 매 프레임 마다 정확히 같은 움직임을 반복한다. 구멍은 이 움직임에 정확히 응대한다. 내가 2011년부터 시작한 ‹필름 워크Film Walk› 퍼포먼스는 이 구멍을 움직임이 아니라 옵티컬 사운드 헤드(Optical Sound Head)를 위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노동이 아닌 기술적 조작의 차원에서 출발한 것인데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종 노동자의 노예 상태는 질료와 형태가 일치되도록 해주는 그 조작을 더 불투명하게 만드는데 기여해 왔다.”

필름의 물질적 형태를 완수시키기 위해 나는 간단한 조작을 했다. 영사 지침에 언제나 언급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언제나 필름의 퍼포레이션이 영사기사를 향해야 한다.’를 무시하고 바깥쪽을 향하게 한다. 이제 구멍은 게이트의 운동에 의한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손이 가진 힘과 걷는 속도에 따라 ‘하나의 구멍에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소리의 수는 정확히 시간의 길이와 일치한다. 퍼포레이션 사운드의 축적(Sound Accumulation)은 프레임의 축적을 대신한다. 이것은 아주 투명하고 교육적이며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퍼포먼스다.


문자주의(Lettrism) 영화로부터 다큐멘터리의 다양한 인용 방식들, 특히 수공예적 이미지 생산의 다양한 방식에 기반한 지아니키안과 리치 루키(Yervant Gianikian & Angela Ricci Lucchi), 재활용과 습득과 발견을 통한 아방가르드의 전략들은 브루스 코너(Bruce Conner)에서 켄 제이콥스(Ken Jacobs), 구스타프 도이치(Gustav Deutsch)나 피터 체르카스키(Peter Tscherkassky)와 같은 동시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카우보이 영화 창시자에 대한 경의를 표명한 모리스 르메트르(Maurice Lemaitre) ‹리오 짐의 노래The Song of Rio Jim›(1978)나 홀리스 프램튼의 ‹노동과 나날들Works and Days›(1969), ‹퍼블릭 도메인 Public Domain›(1972)은 파운드 푸티지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 —예를 들면 제롬 노팅제(Jérôme Noetinger)의 ‹귀를 위한 시네마Cinéma Pour L'Oreille› 프로젝트나 더 중요하게는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의 ‹주말 Weekend›(1930)까지—의 역사를 소환해야 할 필요성, 필름이 가진 다양한 지표성에 대한 의문, 저자의 소멸(필름 아카이브 성격의 변화에서부터 촬영자의 익명성을 강조한 일련의 흐름까지 포함하여)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논의가 요구된다. ‘파운드(Found)’라는 단어가 뜻하는 모호함은 ‘수집과 채집’ 혹은 ‘발견과 습득’과 같은 태도를 상정하며 역사가, 민속학자 등으로 영화작가의 위치를 확대하려는 인식은 파운드 푸티지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2010년부터 시작된 퍼포먼스 ‹애프터 사이코 샤워After Psycho Shower›는 작년 겨울 마무리되었다. 대만의 실험영화 작가인 토니 우(Wu Chun-Hui)에게 선물 받은 그의 2001년 작품 ‹사이코 샤워 Psycho Shower›와 경매를 통해 구한 히치콕의 ‹사이코Psycho›(1960) 다운사이즈 16mm 프린트로부터 이 작품은 시작되었다. 편집 없이 두 가지 프린트를 공연의 재료로 사용하고, ‘이후(After)’라는 단어를 붙여 제목을 만들고(세 가지 단어의, 세 명의 작가의 이름 대신) 3년 동안 여러 나라의 다양한 형태의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약 한 시간이라는 공연에사용 가능한 길이의 필름만 사전에 잘라내어 준비해두었다. 실제 공연을통해 연습을 반복하고, 매번 공연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았다. 공연할 때는기본적인 화면의 위치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외하고 최대한 이전에 했던 행위를 반복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공연 때마다 현상된필름을 가지고 공연장 구석에 마련한 밝은 암실로 갔다. 공연장 객석의 위치, 공간의 거리와 밝기, 영사기의 종류,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의 테이블세팅(즉흥에 대한 태도와 습관에 편재되는장치 배열의 외관)에 따라 매번 다른 결과가 발생했다. 현상된 필름은 공연장에서 즉흥적 수행의 ‘현상(phenomenon)’과 물질적 ‘흔적(evidence)’이 된다.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의 선형적 관계는 비선형적 원형적 관계를 맺는다. 이는 프린트, 푸티지, 필름 루프의 관계로 대치된다. 그리고 두 관계는 편집의 행위와 다시 관계를 맺는다. 스플라이싱, 필름과 로딩, 영사기 까지 이 세 묶음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는 <관객, 장소, 시간, 무대, 세팅>이다. 정확히 보고, 듣는 것을 기억하고 철저하게 잊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견고해지는 이 관계의 중심에는 작가의 신체가 있다. 장치와 관계를 통해 신체는 확장된다.